하고싶은 게 생기면 바로 하곤 했다.
목표가 생기면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근데 이상하게 이건 시작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 해내고 싶다가도 막상 혼자 나서려니 귀찮기도 했고 두려웠다.
여러 핑계를 대며 내일로 미루었다.
뭘 챙길지 모르겠으니까 생각해보고 가자.
적당한 가방이 없으니까 만들고 가자.
어디로 가지? 못정했으니까 찾아보고 가자.
남들 시선 없이 온전히 내 시간을 갖는 게 목표였는데
그럴 수 있을까, 계속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안되겠다 싶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거나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고,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힘든일도,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하루들이 지나면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내 자아가 강해지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나한테 실망만 하게 둘 순 없었다.
정한 장소에 도착하고 사진 속 길을 내려가면서 탁 트인 공간을 봤을 때, 마음이 설레고 떨렸다.
여러 감정으로부터 나온 진동이었다.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시원한 바람부터 하늘색 하늘, 넓은 공간이 주는 좋은 느낌,
도달했다! 라는 짧은 순간만으로 깨끗하게 잊혀진 나에 대한 실망감과 그자리를 채운 뿌듯함,
무엇보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누군가에 의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그동안 내가 알던 '행복하다', '재밌다' 하던 느낌들과는 다르게 훨씬 깊게 느껴지는 행복함이 오래 머물렀다.
'우와, 이렇게 행복해도 돼?' 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아니었지만, 예쁜 색깔이 시야를 가득 채워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내 기분의 모습이 그랬다.
소풍을 나가서 뭘 할지 모르겠었다.
일기를 쓸까, 그림을 그릴까, 글을 써볼까.
그래서 그냥 백지를 챙겨갔다.
결국 하게 된 건 생각 정리 정도?
잘 해내고 싶은 것들, 그게 내 욕심은 아닌지 뭐 이런 거
사실 사람들 시선이 완벽하게 신경 안쓰이는 건 아니었다.
싸간 도시락 먹으려고 꺼낼 때 가장 창피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도시락 다 먹어갈 때쯤 비둘기들이 날라들었을 때가 제일 창피했다.
아무도 안 볼텐데 창피했다.
혼자 햇빛에 앉아 고구마 먹다가 펜 들고 이것저것 쓰다가 믹스커피 마시고 입 데일 것 같아서 물 마시고, 겨울왕국 포크가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고구마 집어 먹고.
쓰고나니까 더 한 거 없어보이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인데 왜 혼자 하기 두려웠을까 싶다.
내가 있던 곳이 비행기가 지나가는 길인 것 같았다.
비행기가 정말 가까이에서 정말 자주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비행기 날라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비행기 먹는 척 하는 영상을 찍었는데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 멋지지도 않은데 웃기지도 않아서.
가방 짐을 좀 줄여봐야겠다.
무거우니까 돌아올 때 조금 귀찮았다.
근데 또 줄일 게 없다...
예전이었으면 그냥 편의점에서 사서 다 먹고 비닐 째로 버리고 왔을텐데, 일회용품을 줄이려고 텀블러도 사고 도시락도 싸가는거라 음식은 대체 불가.
아 물이 두 개라 무거웠나.
그럼 커피를 빼? 어 안되는데,,,
아무튼
나중에 가족이든 친구든 소중한 사람이 아무 생각도 안하고 싶어할 때, 난 위로의 말이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대신 이곳에 데려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공간이 내 소풍을 통해 많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엔 어디로 가볼까 설렌다.
그땐 무슨색 옷 입지 더 설레네.
'횡단보도 > Challeng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80%완료]100장그리기챌린지 (0) | 2020.12.01 |
---|---|
네이버 그라폴리오 시작 (+ 데뷔 배지 획득) (0) | 2020.11.25 |
[홀로 나들이] 내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0) | 2020.10.23 |
SNS 금식 후기 (0) | 2020.09.10 |
[피아노 연주곡 끝내기 도전] 피아노 연습 일주일에 한 곡 프로젝트 (0) | 2020.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