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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Reading

202306 [야간비행]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

 

무선기사는 저 하늘 어딘가에 과일 속의 벌레처럼 뇌우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밤이지만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다. 

 

인간은 일단 결정하고 나면 삶이 만들어내는 우연에 만족하며 그곳을 사랑하는 법이니까. 그것은 사랑처럼 우리를 가두어놓는다.

 

마을은 그 오롯한 부동성으로 은밀함을 지켜내며 온화함을 내어 주기를 거부했다. 

 

3.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 그저 원인 모를 불안함만을 느꼈을 뿐이다. 마치 혼자 있다고 생각했으나 누군가 바라보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뒤늦게, 영문도 모른채 자신이 분노에 휩싸여 있음을 깨달았다. 그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 아무것도 그를 위협하지 않았다. 돌풍의 기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 

 

싸워야 할 일도 없는데, 그는 조종석 제어 장치를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예측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곧 뛰어오를 짐승처럼 팽팽하게 근육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고요하기만 했다. 그렇다, 고요했다. 그것은 이상한 힘이 실린 분위기였다.

 

격렬한 행동은 거의 모든 흔적을 지웠다. 그는 자신을 휘감았던 거대한 돌풍에 대한 상황을 더 이상 기억해낼 수 없었다. 단지 그 잿빛의 불길 속에서 맹렬히 사투를 벌였던 것만 어렴풋이 생각날 뿐이었다. '태풍,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목숨은 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직전! 태풍과 맞닥뜨리는 그 순간만은!' 그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어떤 한 모습을 알아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이미 잊어버리고 말았다.

 

4.

 

"맑은 하늘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어요."

 

"아니요, 바람 한 점 없이 맑을 때 착륙했어요. 하지만 폭풍은 바로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어요."

그는 '이상한' 그 폭풍에 대해 설명했다. 

 

5.

 

그는 회사를 중대한 위기에서 구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어떠한 위기도 겪고 있지 않았다. 이제까지 그는 프로펠러 중앙 부분에 발생한 녹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는 참담한 표정으로 비행장 주임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으로 그 녹을 문질러댔다.

 

하지만 그날 저녁의 로비노는 오직 자신의 비참함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유일하고 개인적인 비밀, 성가신 습진에 고통스러워하는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동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자존심으로는 찾아내지 못한 위로를 겸손함으로 구하고 싶었으리라.

 

6.

 

세계의 절반을 감시하는 밤의 파수꾼으로서...

 

지금 무선국의 수신자들은 또다른 우편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는 신비를 향해 문을 열어주던 이 작고 거무스름한 돌멩이들에게서 자신의 실패와 불행한 결혼 생활과 그 모든 무미건조한 진실을 위로 받았다.

 

리비에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상념을 이어 갔다. '이 항로는 아름답지만 너무 가혹해. 우리에게서 많은 사람들, 수많은 젊은이들을 앗아갔으니, 비록 확립된 권위로 인정받고는 있지만,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가!' 그러나 리비에르에게 최우선인 것은 무엇보다도 확실한 목표였다.

 

리비에르는 언제나 곧잘 이런 식으로 말했다.

"음악가의 불면증이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낸다면, 그건 보람 있는 불면증일 테지."

 

그러니까 리비에르는 매일 밤 하늘에서 하나의 행동이 드라마처럼 서로 얽혀 벌어진다고 생각했다. 의지의 굴절은 실패로 이어질 것이고, 그러면 그날 하루 지상에서는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삼십 분은 지나야 할 것이다. 리비에르는 고속 열차가 선로 위에 서 있을 때, 시간이 지나도 들판을 벗어나지 못할 때의 그 답답함을 알고 있다. 시계의 큰 바늘은 이제 죽은 공간을 넓히고 있다. 벌어진 그 시곗바늘 안에 수 많은 사건들이 메워질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그 밤은 더욱더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밤은 자기 어깨에 생명을 지고 있었다. 리비에르는 그 생명을 보살폈다.

 

7.

 

조종석의 붉은 전구 외에는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그 작은 불빛에 기대어 밤의 한복판으로 하강하는 느낌에 전율을 느꼈다. 

 

아마도 그 힘이 그를 뇌우로 몰아가겠지만 동시에 그를 보호해줄 것이다.

 

8.

 

"이런 음악은 지루해, 자네도 지루할 테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을 뿐이지."

"그럴지도 몰라."

그는 그때에도 자신이 오늘 밤처럼 검고 외롭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러한 고독의 풍요로움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음악의 메시지는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에게만 은밀한 부드러움으로 다가왔다. 별의 신호도 그랬다. 수많은 사람들 너머로 오직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군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 중에서 창의력이나 사랑 때문에 종종걸은 치는 이들을 찾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등대지기의 고독을 떠올렸다. 

 

십 년 동안의 경험과 작업 기록들, 그는 풍부한 자산을 보유한 은행의 지하 금고를 방문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록 하나하나가 황금보다 더 귀한 것이었으며 살아 있는 힘이었다. 살아 있지만 은행 금고 안의 황금처럼 잠들어 있는 힘.

 

야간 비행은 밤새 돌봐야 하는 열병처럼 지속된다.

 

그리고 거의 영원과도 같은 그 몇 초 동안, 아버지의 얼굴에는 비밀로 남게 될 그 불행에 대해 생각했다. 

 

리비에르는 밤의 무게를 책임지고 있는 또 한 사람의 동료에게 진한 우정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전우인 셈이지, 이렇게 같이 밤을 새우는 일이 우리를 얼마나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

 

9.